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권은해 집 - 기장 3·1운동 만세계획지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종류 | 가옥 |
상태 | 변형 / 일부는 훼손되었고 본채는 수리 보수하여 기와집 형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분번되어 본채가 있던 부분만 일정정도 유지되고 있다. |
정의 |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면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시위 당시 김도엽 등 청년들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만들던 곳이자, 일제시대 기장지역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인 권상중과 여성운동가로 활동한 권은해가 살았던 곳 |
관련정보
관련 사건 | 1919.4.5 동래군 기장면 독립만세시위 |
---|---|
관련 조직 | 광복회/백산상회/기장여자청년회/기장여자노동야학회/근우회 양산지회/양산농민조합 |
관련 인물 | 김도엽(金度燁)/김수룡(金壽龍)/안희제(安熙濟) |
관련 내용 |
이곳은 일제시기 동래군 기장면 지역에서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펼친 권상중(權商重, 權尙重)과 기장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일제시대 여성운동가였던 권상중의 딸 권은해(權銀海)의 생가터이다. 1919년 4월 5일 기장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당시 이 집 사랑방에서 김도엽(金度燁)·김수룡(金壽龍) 등 청년들이 만세운동을 계획 협의하고 깃발과 태극기 등을 만들었다. 권상중은 1910년 경 기장지역 지주들과 함께 사재를 털어 기장의 사립학교인 보명학교와 명정의숙을 설립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광복회를 통해 독립군자금을 안희제(安熙濟)의 백산상회로 보내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19년 독립만세시위 당시에는 면장으로 재직하면서 면사무소의 등사기를 내어주어 독립선언서를 찍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권은해는 1919년 독립만세시위 이후, 1920년대 기장지역에서의 기장여자청년회와 기장여자노동야학회 등의 설립을 주도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29년에는 근우회 양산지회 설립에 참여하여 창립대회 때 임시의장으로, 1931년에는 양산농민조합 부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 「機張郡 邑內面 東部洞 地籍原圖」, 1912. 한상구, 「일제시기·해방직후 경남지역 사회주의운동의 맥 - 3·1운동 참가부터 경남 여맹위원장,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권은해 일대기」, 『역사비평』 8, 역사문제연구소, 1990, 369~402쪽. 부경역사연구소, 『시민을 위한 부산인물사 -근·현대편-』, 선인, 2004, 13~27쪽. |
지역정보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 194 |
---|---|
주소 | 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194-2 |
도로명 주소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299번길 18 |
위치 고증 | 「일제시기·해방직후 경남지역 사회주의운동의 맥」에 관련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제적등본」과 「토지대장」을 통해 당시 주소지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