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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신문이 가진 권력이란 비상한 것이다. 이토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一筆)이 한인(韓人)을 감동하게 하는 힘이 매우 크다. 그 중에도 지금 한국에서 발간하는 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 확증이 일본의 제반 악정을 반대하는 한인을 선동함이 연속부절하니 이에 관하여는 통감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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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 |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 박동(현 수송동)에서 영국인 신문기자 베델〔裵說, E. T. Bethell, 1872-1909〕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양기탁(梁起鐸, 1871-1938)을 총무로 하여 창간되었다. 처음에 국문 2면, 영문 4면으로 발행하던 것을 1905년 8월부터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으로 나누어 발행했는데, 이때 박은식·신채호 등이 논설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사업이 확장되면서 사옥을 1907년 1월 지금의 프레지던트호텔 부근으로 이전하였다. 1907년 5월 30일부터 국한문판 · 영문판 · 순 한글판 세 종류의 신문을 발행했는데, 발행부수가 1만 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무렵 『대한매일신보』는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의 기관지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의병운동을 비롯한 항일투쟁에 대한 사실 보도와 일제 침략을 비판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논설을 통해 민족 언론으로서 확고히 자리매김을 하였다.

읽기
읽기자료 1
- 질문1 『대한매일신보』가 자유롭게 항일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발행인은 누구인지 써 봅시다.
- 질문2 『대한매일신보』가 펼친 항일운동의 내용을 써 봅시다.
- 질문3 일제가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꾸어 총독부 기관지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추론하여 써봅시다.
읽기자료 2
- 질문1 베델이 신문만은 살려 한국 동포를 구원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질문2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매일신보』를 두려워한 이유를 써 봅시다.
- 질문3 『대한매일신보』의 독립활동 내용을 정리하여 써 봅시다.

시각자료
시각자료 1

이 비는 베델의 추모비로 원래 1910년 장지연이 비문을 썼지만, 일제는 칼과 망치로 그 내용을 지워버렸다. 현재의 비는 광복 후 20년이 지난 1964년 되어서야 언론인들이 성금을 모아서 원래의 비문을 새긴 작은 새 비이다. 현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있다.
- 질문1 베델의 추모비를 일제가 칼과 망치로 그 내용을 지워버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 질문2 장지연이 쓴 비문의 내용을 추론하여 써봅시다.
시각자료 2

양기탁은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을 뿐만 아니라 1907년 안창호 등과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창간 때 편집고문에 취임하였으며, 고려혁명당을 세워 무장투쟁을 지원하였다.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투옥과 탈출, 투쟁을 반복하였으며 193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 되었다.
- 질문1 양기탁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써봅시다.
- 질문2 양기탁이 언론활동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목적은 무엇인지 써 봅시다.
시각자료 3

- 질문1 장지연의 논설과 관련 있는 역사적 사건은 무엇인가요?
- 질문2 ㉮에서 지칭하는 사람의 이름을 모두 써 봅시다.
- 질문3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요?

모둠활동
『대한매일신보』기자가 되어 「시일야방성대곡」을 지지하는 기사를 써 봅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하여 활동한 외국인에 대해서 조사해 봅시다.
모둠별로 베델의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하여 발표하여 봅시다.
